퇴근하고 데이터 라벨링을 시작했는데 자꾸 딴짓만 하게 된다

처음엔 데이터 라벨링이 참 만만해 보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그냥 누워있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데이터 라벨링 알바를 알게 됐다. 사진 속에서 사물을 찾아서 박스를 치거나, 문장의 의도를 분류하는 단순 작업이라고 하더라. ‘이 정도면 드라마 보면서 해도 되겠는데?’라는 생각으로 이름 있는 플랫폼 두 곳에 가입했다. 가입비는 당연히 없었고, 초반에는 무슨 자격증 같은 교육을 들어야 하길래 며칠 저녁을 투자했다. 약 3시간 정도 교육 영상을 봤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내용이 깐깐해서 처음엔 당황했다. 박스를 아주 딱 맞게 쳐야 한다거나, 애매한 물체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기준이 너무 많았다. 그냥 마우스만 까딱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려니 가이드라인이 책 한 권 분량이었다.

집에서 노트북으로 하려니 집중이 도저히 안 된다

막상 작업을 시작하려니 노트북 앞에 앉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평택 근처로 이사 오면서 방 하나를 작업실처럼 꾸며두긴 했는데, 결국은 그냥 거실 소파에 앉아서 하게 된다. 작업을 하다가도 핸드폰 알람이 울리면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또 유튜브 알고리즘에 빠져서 30분은 그냥 보낸다. 한 건당 몇십 원, 많아야 몇백 원 하는 작업들을 하려니 눈이 침침하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덤볐는데 어제는 2시간을 앉아서 4천 원 조금 넘게 벌었다. 이걸 최저임금으로 따지면 말이 안 되는 수준이라 갑자기 현타가 크게 왔다. 그래도 뭐, 치킨 값이라도 벌자는 생각으로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는데 화면 속 도로 표지판이 왜 이렇게 작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SNS에서 팀미션 알바라는 걸 봐서 혹할 뻔했다. 고수익을 보장한다기에 들어가 보니 처음엔 소액을 입금하고 미션을 수행하면 돈을 더 얹어준다는 식이었다. 다행히 예전에 뉴스에서 본 사기 유형이랑 비슷해서 그냥 창을 닫아버렸다. 그런 사기 치는 놈들이나, 아니면 하루 종일 좁쌀만 한 사진 들여다보면서 라벨링 하는 나나, 퇴근하고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가끔은 코바늘 뜨개질이나 하나 배워서 팔아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게 정신 건강에는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또 이미 가입해 둔 플랫폼 아이디가 아까워서 자기 전에 딱 20분만 더 하고 자게 된다.

데이터 라벨링, 정작 남는 건 시간 부족과 뻐근한 목뿐이다

주변에 부업으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누구는 블로그에 글을 올려서 광고 수익을 낸다는데, 나는 글재주도 없고 뭘 검색할지 정하는 것부터가 너무 막막하다. 그래서 결국 가장 만만한 이놈의 라벨링을 붙들고 있는데, 목이랑 어깨가 너무 뻐근하다. 모니터 높이 맞춘다고 책을 몇 권 쌓아봤는데 영 불편하다. 카페에서 하면 좀 나으려나 싶어 평택역 근처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가본 적도 있다. 그런데 거기서도 커피 값 내고 2시간 동안 작업한 게 5천 원도 안 되니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카페인만 잔뜩 마시고 작업은 거의 못 했다.

애초에 대단한 수익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처음엔 소소하게 한 달에 10만 원만 더 벌자고 시작했다. 그런데 10만 원 벌려고 들여야 하는 시간이 내 생각보다 훨씬 길다. 가이드라인을 매번 숙지해야 하고, 검수 결과가 반려되면 수정하는 시간까지 걸린다. 반려 사유가 ‘박스가 2픽셀 밖으로 나감’ 같은 거면 진짜 책상을 치고 싶다. 남들은 데이터 라벨링이 미래 유망한 직업이라고 하던데, 지금 나한테는 그냥 빨리 끝내고 싶어서 마우스만 빠르게 돌리는 노가다일 뿐이다. 오늘 밤에도 벌써 1시간째 붙들고 있는데, 벌써 11시다. 내일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데, 그냥 끄고 누울지 아니면 딱 하나만 더 하고 잘지 고민 중이다. 아마 결국 하나 더 하고 눕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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