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결재 양식 하나 만드는 데에만 오후를 다 썼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말하길래

요즘 생성형 AI가 대세라고들 해서 나도 업무 시간을 좀 줄여보겠다고 설쳤던 게 화근이었다. 회사에서 매번 전자결재프로그램을 켜고 보고서 양식을 새로 짜는 게 너무 귀찮아서, 그래 AI를 시키면 금방이겠지 싶었거든. 사실 처음에는 미드저니로 이미지를 뽑거나 챗GPT한테 보고서 초안을 맡기면 만능일 줄 알았다. 시스코 같은 데서도 보안 사고 보고서 쓸 때 AI를 쓴다길래 나라고 못 할 거 있나 싶었던 거지.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시키니까 내가 원하는 딱딱한 공공기관 스타일의 문체를 뽑아내는 게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결과물은 그럴듯한데 수정이 더 걸려

한참 씨름해서 텍스트를 뽑아놓고 보니까, 이게 참 미묘했다. 문장은 매끄러운데 정작 보고서에 들어가야 할 핵심 수치나 구체적인 일정 같은 건 다 뭉뚱그려져 있더라. 대학 레포트도 아니고 회사 결재 서류인데 ‘어느 정도 기한 내에 완료하겠다’는 식의 표현만 가득하니, 결국 다시 엑셀이랑 한글 문서를 켜서 내가 하나하나 다 고치고 앉아 있었다. AI가 시간을 줄여주는 게 아니라, AI가 싼 똥을 치우느라 내 오후가 다 지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이럴 바엔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템플릿 열어서 쓰는 게 빨랐겠다 싶더라.

그래도 포기하기엔 좀 아까워서

그래도 쓴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이번엔 ‘부산마케팅 전략 보고서 요약’을 부탁해 봤는데, 확실히 검색해서 자료 찾는 시간은 줄더라. 옛날엔 구글링하느라 탭 10개씩 띄워놓고 헤맸는데, 요약된 내용을 보고 필요한 부분만 골라내니까 속도는 좀 붙는 것 같다. 한 5만 원 정도 하는 유료 툴을 결제해서 쓰고 있는데, 본전을 뽑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굳이 돈을 냈으니 어떻게든 내 루틴에 끼워 넣으려고 애쓰고 있긴 한데, 이게 맞는 건지 가끔 회의감이 든다.

엉뚱한 곳에서 꼬여버린 자동화

자동 매매나 AI 기반 생활민원 서비스 같은 걸 보면 다들 세상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내 업무는 갈수록 더 복잡해지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엔 AI가 작성한 이미지로 홍보물을 만들었다가, 사람 손가락이 6개인 걸 뒤늦게 발견해서 구인 광고 올리기 직전에 식은땀을 흘렸다. 미드저니도 그렇고 요즘 애드몹 수익 자동화니 뭐니 하는 말들이 많던데, 이게 설정해두면 그냥 굴러가는 게 아니더라. 결국 사람이 계속 들여다보고 이상한 거 없는지 체크해야 하니 ‘완전 자동’이라는 말은 그냥 마케팅 용어인가 싶기도 하고.

나아진 건지 오히려 일만 늘어난 건지

주변에선 생성형AI교육 좀 들어보라고, 요즘 이거 모르면 도태된다고 겁을 주는데, 정작 내 실무는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숏폼 공모전 같은 거 할 때 AI로 배경음악이나 자막 정도 넣는 건 편하긴 하더라. 하지만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기획서나 결재 서류는 결국 내 머리에서 나와야 하니까. 어제도 3시간 동안 AI랑 씨름하다가 결국 밤 9시에 사무실 불 끄고 나왔는데, 내가 시간을 아낀 건지 아니면 새로운 방식의 야근을 하고 있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내일은 또 어떤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을지, 그놈의 환각 현상인지 뭔지 때문에 한 줄 한 줄 검수할 생각하니 벌써 피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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