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양식 몇 장 뒤적거리다 하루가 다 지나갔다

처음 위탁판매를 시작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그저 물건만 잘 떼어오면 되는 줄 알았다. 스마트스토어나 쿠팡 같은 곳에 상품을 올리기만 하면, 나머지는 알아서 돌아갈 거라는 아주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거래처를 뚫으려고 하니 다들 계약서부터 가져오란다. 공사계약서 양식이나 일반적인 임대계약서 양식 같은 건 인터넷에 치면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막상 우리 상황에 맞는 문구를 넣으려니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이게 뭐라고, 서류 한 장 작성하는 게 이렇게 진이 빠지는 일인지 몰랐다. 처음에는 무료 서식 사이트에서 아무거나 다운받아 수정해서 보내줬는데, 상대 쪽에서 며칠 뒤에 연락이 왔다. 판촉비용 분담 비율이나 리드타임 같은 게 하나도 안 적혀 있다는 거였다. 사실 리드타임이 뭔지도 정확히 몰라서 검색창을 한참 두드려야 했다. 그때 쿠팡이랑 CPLB 관련 뉴스들을 보면서 알게 된 건데, 계약서에 그런 세세한 걸 다 안 적어놓으면 나중에 정말 큰일이 날 수도 있겠더라.

엉성하게 만든 서류가 가져온 불편함

결국 첫 번째 계약 시도는 흐지부지되었다. 상대방은 내 서류를 보더니 ‘이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약속 아니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았을 리 없다. 하지만 그 사람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근로계약서나 주식양도계약서처럼 나중에 법적인 다툼이 생길 법한 서류들은 아주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물건 몇 개 넘기는 위탁판매에서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아는 지인 중에 공간대여업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자기 사업장 계약서만 수십 번을 뜯어고쳤다고 한다. 나도 이력서 서식 하나 만드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을 겪고 나서야 겨우 구색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정작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서 보냈더니 이번에는 그쪽에서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서명을 해주더라는 점이다. 허탈하기도 하고, 괜히 고생했나 싶기도 했다.

계약서의 무게와 실무의 간극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문서에 적힌 내용보다 훨씬 더 지저분한 변수들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 농산물 도매하시는 분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보면 계약서에 ‘상태 좋은 상품’이라고 적어두어도 실제 배송되는 건 썩은 사과가 섞여 있기 일쑤다. 이럴 때마다 계약서 양식을 들먹이면서 싸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은 그냥 내가 감당하거나 다음 거래를 끊는 식으로 해결하게 된다. 실무에서는 계약서보다 신뢰나 평소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다고 계약서를 대충 써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예전에 아파트 관리비 횡령 의혹 때문에 시끄러웠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결정적인 건 결국 지출결의서나 세금계산서, 계약서 같은 종이 뭉치들이었다. 종이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사람은 참 많이도 거짓말을 한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지금은 위탁판매를 몇 번 해보고 나서, 나름의 표준 양식을 하나 만들어두었다. 엑셀로 항목별로 정리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이름만 바꾸는데, 가끔 이 방식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적어놓은 내용이 법적으로 얼마나 효력이 있을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정말 보호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 그렇다고 변호사를 찾아가 매번 검토를 받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몇 만 원짜리 물건 파는 거에 몇 십만 원짜리 법률 자문을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은 매번 ‘별일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도장을 찍는다.

마무리를 짓지 못한 서류 더미

어제는 또 다른 거래처에서 차량매매계약서 양식을 좀 보내달라고 해서 밤새 검색을 했다. 중고차 시장에서 흔히 쓰는 것들을 보는데, 내가 이 일을 왜 시작했나 싶기도 하고 그냥 편하게 알바나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이 내 사업을 키우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텐데, 지금은 그냥 매일매일 새로운 서류와의 싸움 같다. 정리가 좀 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계약 건이 들어오면 또다시 처음부터 고민을 해야 한다. 계약서라는 게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지만, 또 그게 전부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 아침에도 메일함에 새로운 위탁 계약안이 들어와 있는데, 열어보기가 왜 이렇게 귀찮은지 모르겠다. 일단 커피 한 잔 더 마시고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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